
김아영씨 아티스트 북이 출간되었습니다. 책 표지 앞에 포스터가 별첨 부록으로 있는 등 여러가지 숨은 장치가 많은 물리적으로도 재미있는 책입니다. 사진은 말 할 필요없이 좋습니다.
아영씨 작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아래에 첨부합니다.
---------------------------
김아영: 세트 속 삶의 세트화, 초국적 감각을 발명하기
00.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런던에서 사진을 공부한 김아영의 첫 번째 개인전 Ephemeral Ephemera가 스페이스 바바에서 열린다. 전시와 함께 출간되는 도록에 그녀 작업과 작가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실리겠지만, 이 글에서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김아영 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조심스럽게 제안해보고자 한다.
01. 모든 사람들은 영화를 본다. 우리가 보는 영화의 대부분은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 세트장을 활용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영화 세트장을 인식하는 관객은 없다. 그것은 영화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인데, 영화는 자신이 세트되었다는 것, 가상의 무대 안에 설정되었다는 것을 감추고 싶어 한다. 카메라가 1초에 24장씩 사진을 찍고 이것을 연속적으로 보여줬을 때, 즉 사진에 시간을 부여할 때, 관객들은 이 영상이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는 소위 봉합이라고 하는 영화 고유의 매커니즘이 작동한다. 이런 매커니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고다르로 대표되는 60, 70년대 모더니즘 계열의 유럽 감독들에 의해 이뤄졌고 이것에 상응하는 담론적 생산물도 많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핵심은 영화는 자신이 설정되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허구적 생산물을 그렇게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02. 영화적 삶을 한번 상상해보자.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라는 개념을 말 그대로 가져다 쓰자면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이미지-기계에 의해 재생산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똑딱이 카메라, 6mm 카메라, 방송용 카메라, 영화 필름 카메라 등. 또 이것을 기록하는 매체가 있는데 디지털, 아날로그의 홍수 속에서 우리 삶은 이미지-기계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영화적 삶은 무엇일까? 세트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영화처럼 어떤 허구적 장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삶을 뜻하는 것일까? 김아영의 작업에서 징후적으로 드러나는 여러 공통적 현상들, 즉 연예인 자살, 국제적 가십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수치에 불과한 전지구적 경제 지표와 자금의 이동이 각국의 여론을 들썩거리고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작동 방식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건을 세트 안에 넣고 사람들이 거북하게 느끼지 않도록 봉합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 말이다. 음모 이론 아니냐고?! 음모라기 보다는 삶의 우연성을 잊게 만드는 초국적 장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에서 하는 소리이다.
03. '영국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아시아 여성'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작가의 작업에 대해 의외로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추측할 것이다. 그녀 사진은 자신이 지금 생활하고 있는 영국과 원래 태어나고 문화적 소양을 쌓았던 한국 사이의 차이, 그 차이의 충돌에 기반 하지 않을까. 그러나 김아영의 작업만큼 이런 기대를 무너뜨리면서, 차이가 아닌 보편성의 토대 위에서 작동되는 작업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세계 안에서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는 어떤 초국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 초국적인 것을 지구인의 교양으로 볼 수도 있고, 혹은 ‘공통적인 것’이라는 이름 아래 묶을 수 있는 여러 이질적 요소들로 생각할 수도 있다. 김아영은 이질적인 것을 모으기 위한 전략으로 자기만의 무대를 만들고 그것을 카메라-기계에 담는 작업을 했다.
04.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 삶의 가상성을 방해하는 여러 찌꺼기들, 수치화될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것들, 냉전 시대의 찌꺼기들, 이런 것들은 예측할 수 없이 돌출되는 현재와 과거의 유산들이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초국적인 보편성은 국적, 성별, 나이, 학력 수준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세계인들이 보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읽고 그것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성은 우리 모두의 삶을 무화시키고 그 순간을 허구적인 것으로, 즉 영화 세트장처럼 있음 직한 것으로만 보이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독이 된다. 또한 이것이 초국적 보편성이 될 때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마치 단일한 삶의 목표와 과정을 겪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김아영이 활용하는 보편적 감성은 보편성을 하나의 도구로, 전용하는 그녀만의 전략이다. 그녀가 만드는 무대는 우리에게 초국적인 보편성의 감성을 자극한다. 우리가 대중문화 즉 코믹스, 대중영화, 국제적 가십 등을 통해 습득하고 공유하는 교양을 활용하면서.
04. 메를로 퐁티는 "작가는 직물의 뒤편에서 활동하는 자들"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을 했을 때 그는 이미지가 아닌 언어를 재료로 삼는 작가를 지칭했던 것이지만, 결국 핵심은 이미지나 언어를 다루는 작가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축어적으로 해석하자면 정말 작가는 직물의 뒤편에서, 사건의 뒤쪽에서 사고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김아영의 사진이 특히 그렇지 않은가. 그녀는 카메라-기계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 삶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들에 주목한다. 하지만 명심할 것이 있다. 이런 사건은 카메라-기계가 우리 삶을 관찰하고 있기에 하나의 사건으로 인정받은 것들이다. 버스 위로 투신 자살한 남자, 독살당한 전직 KGB 요원, 해안가로 나와 죽은 고래 시체, 도쿄의 한 아파트에 모래로 채운 욕조에서 죽은 영국인 등. 이 사건들은 하나의 이미지로 결정화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사건들이다.
05. 김아영의 사진 작업의 프로세스를 생각해보자. 우선 사건을 선택하고 그 의미를 읽고 그것을 풀어낸다. 이 프로세스는 모든 작가들에게 공통되는 것이지만 우연을 가장하며 방문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의미에서 특히 중요하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외국의 반응은 단일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오는 지점은 매우 복합적인 반응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영국 사람이 도쿄의 어느 아파트에서 자살을 했다. 이 뉴스는 하나의 사실이지만 어떤 정서를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매끈한 티브이 기사와는 틀리다. 작가의 작업 노트는 시지프의 신화에 나오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무대 장치들이 문득 붕괴되는 경우가 있다." 김아영이 낯설고 이상한 사건들을 선택해서 그것을 스튜디오 세트 안에서 다시 재현할 때, 그녀는 우리에게 익숙한 보편성의 논리를 전도시킨다.
06. 무대 장치는 쉽게 붕괴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무대 장치가 붕괴되진 않는다. 영화가 그런 것처럼 사람들은 허구적 생산물을 그렇게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히 찾아오는 손님처럼, 낯설고 이상한 계기들이 우리 삶을 객관화시키고 무대를 붕괴시키기도 한다. 여기서 무대는 보편성의 논리이고 우리가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틀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이야기하자. 김아영이 신문의 쪼가리를 잘라내서 그것으로 새로운 무대를 만들었다면 그 무대는 너무 연약해서 금방 부서질 수 밖에 없고, 허구적인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조약함 그 자체이자, 영화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처럼 매체의 물질적 기반을 흔드는 그런 위치에 다름이 아니라고. 동시에 그 무대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 전시의 이름처럼, 대수롭지 않은 물건들을 지칭하면서 동시에 쓰임이 다 한 뒤에 수집되는 전단지, 티켓 등 자질구리한 물건이 연장된 공간이기도 하다.
07. 끝으로 작가의 이 말을 인용해본다.
"삶의 가치와 유한성에 대한 모순적 집착이기도 한 이 작업을 해 나가는 동안만큼은 나 자신의 유한성을 잊어도 좋다는 또 다른 역설이 내게로 온다. 그저, 모두가 최선을 다 해 가는 각자의 삶엔 이 세상의 모든 질병과 궁핍조차도 감내할 만큼 강력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작가 노트 중)
붕괴될 수 밖에 없는 무대를 만들면서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삶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삶을 더욱 허구적인 것으로 만들고, 우리를 얕고 평평하게 만드는 카메라-기계가 아닐까. 그냥 웃고 넘길 수도 있지만 작가의 이 말을 곰씹어 보면, 누군가의 인생의 편린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 속 대상들이 작품의 피사체가 아니라 삶에 대한 그녀의 윤리적 태도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