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도서관
1
A는 책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경향이 가지고 있다. A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B가 책을 빌려가거나, 혹은 빌려간 책에다가 줄을 긋거나 책을 접는 행동이었다. 책에 대한 A의 이러한 태도를 B는 자주 비난하곤 했는데, 그것은 책의 오리지날 기능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A는 책에도 등급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등급에 따라 취급 방식도 다르다고 여겼다. 반면 B는 책은 장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A처럼 조심스럽게 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A는 종종 책의 컨텐츠보다 형식, 즉 디자인에 집중했다. 한 패션지를 예로 들며, 잡지 내용은 일반의 것과 다를 바 없지만 디자인이 좋기 때문에 이것 또한 아티스트 북이다라고 A는 말한다. A, B는 현재 아티스트 북을 출판하는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고, 여전히 일반 도서와 아티스트 북의 개념과 분류 문제 등에 있어서 결론을 제시하지 못한다. A와 B의 의견 대립은 책에 대한 기본 관점이 다르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A와 B 모두 독립 출판물 또는 아티스트 북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규정이 확고하지 않다. 단지 A는 디자인이 좋은 책도 일종의 아티스트 북이 된다고 여기지만, B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 뿐. 따라서, 문제가 되는 지점들을 살펴보면 첫 번째는 책의 분류이며, 두 번째는 책의 주체들에 관한 것이다.
2
분류의 범주는 단행본에서 정기/비정기 간행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일차적으로 출판사가 결정한다. 최근 출판사가 기획한 책들을 보면, 여행과 미술이 결합된 여행서나 사진 에세이집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미술서도, 여행서도 아닌 이런 종류의 책들은 종종 출판사가 지정한 분류 범주와 상관없이 대형서점에 의해 재분류된다. 똑같은 책이 어떤 서점에서는 미술코너에서, 다른 서점에서는 여행코너에서 판매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여행서로 분류되었을 때 훨씬 더 판매량이 높다는 이유에서이다. 결국 책에 대한 분류는 특정 기관의 심의 없이 출판사의 자의적인 결정권에 속해있고, 이차적으로 그 책을 배급하는 서점에 의해서 다시 걸러진다. 정보의 표준화를 위해 설정된 십진법 체계의 분류법이란 결국 숫자놀이에 불과한, 상당히 유연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궁극에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대중에 의해 분류되는 전이의 과정에 놓여 있다.
얼핏 보기에 느슨한 이 분류 체계속에서 미디어버스와 같은 독립 출판사가 생산한 책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진(Zine)이라 범주화되는 순간, 진의 외연적 의미는 자동적으로 책이 아님과 맞물려져 작용된다. 따라서 도서/비도서, 전문/일반, 영리/비영리의 분류에 있어서 미디어버스의 아티스트 진은 비도서, 전문, 비영리에 해당이 된다. 오히려 도서/비도서의 이분법적 분류에서 벗어나 하나의 문화예술운동이라 공고할 때 대중과의 소통이 가능하며, 이것은 독립 출판물을 이해하려는 독자들의 독자적 이해 방식이 볼 수 있다. 책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분량과 부피, 그리고 보존하기 위한 표지가 있어야 하는데, 유네스코는49페이지 이상의 것을 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규정에서 밀려난, ISBN 낙인이 찍히지 않은 소책자나 1인 출판을 실천하는 다중들의 인쇄물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취급할 것인가. 기존 분류 체계에 우리와 같은 독립 출판물이 예속되길 원한다면, 이것은 소통하기 위해 기존의 분류 기준에 맞춘 필연적인 합의나 전략적인 제휴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독립 출판물의 역사적 소속을 드러내기 위해서 굳이 작위적인 분류를 설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립 인쇄물을 출판하는 미디어버스는 특히 예술 영역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출판을 매개로 한다는 의미는 기존의 출판(Publishing)이라는 개념을 인쇄물에 한정 짓기보다는 CD, DVD 등 다양한 매체들로 포괄하고 있으며 ‘Making Public’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아티스트 북의 경우, 하나의 장르이자 매체로 고착되면서 양가적인 속성을 지닌다. 그것은 대중적인 보급을 전제로 하되, 에디션을 주어 한정 발행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책들은 미술작품처럼 작품으로 취급하기도 애매하거니와, 일반 출판 시장에 속하기도 석연치 않다. 어떻게 보면 우리와 같은 독립 출판사들이 내놓은 책들은 현재 ‘미분류’ 상태에 놓여있다.
미디어버스가 기획자들과 디자이너들로 구성되었다면, 매뉴얼은 즉흥전자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에 의해서 운영된다. 이처럼 책을 만드는 주체들에 따라서 책의 종류 역시 다원화되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버스와 매뉴얼은 이러한 책들을 생존시키기 위해, 자체 유통망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조달하기 위해 이벤트를 만들었다. 작년 8월경에 열렸던 스몰 파켓(Small Packet)이었다. 진 페어의 형식을 취한 스몰 파켓은 해외 및 국내 진들을 전시하며 한 켠에서 책을 판매하였다. 이러한 일회적인 움직임은 말 그대로 이벤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고, 그 중 서가식의 간이 부스를 제작하여 특정 공간에 설치하자는 의견도 포함되었다. 독립 출판물의 생산과 배급, 위치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이러한 움직임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렌(Rennes)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키오스크: 증식의 방식(KIOSK: Modes of Multiplication)’ 이 그 중에 하나이다. 2001년부터 현대미술, 디자인, 현대 그래픽 디자인 영역에서 출간된 독립 출판물 6,000 점 이상을 전시하는 이 행사는 ‘리볼버 Revolver’을 설립하고 ‘JRP/Ringier’ 출판사를 운영했던 크리스토프 켈러(Christoph Keller)에 의해서 2001년에 기획되었다. 키오스크 아카이브는 독립 출판물이 재생산되고 유통되는 다양한 방식들에 주목하여 이를 명확하게 구분 지으려고 한다. 키오스크는 공공장소에서 대중들이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키오스크에 놓인 책들은 대중적인 잡지나 신문 등으로 미디어버스와 같은 독립 출판물이 키오스크의 형태로 공공장소에 배급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역설적으로 크리스토프 켈러가 독립 출판물의 키오스크를 선택한 것은 독립 출판물에 대한 새로운 분류와 대중성과 공공성을 함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동시에, 기존 출판 시장에 대한 대안으로의 자구책이라 볼 수 있다. 이 책들은 파리에서 하는 전시를 마지막으로 2009년 여름 베를린 예술도서관(Kunstbibliothek)에 전부 소장이 될 계획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어떤 범주로 6,000 권 이상의 책들이 분류될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반면 도서관으로 귀결되는 독립 출판물이 있다면, 미술관에 소장되는 작품으로서의 인쇄물도 존재한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 위치한 국립인쇄예술센터 CNEAI (National Center of Imprinted Art)는 아티스트 북(Artists’ books)과 아티스트에 관한 책(Artists’ publications) 들을 구분하고 소장하고 있다. 고서가 아닐 지라도, 심지어 시중에 판매가 되고 있는 아티스트 북일지라도 이곳에서 인쇄물의 가치는 하나의 신화로 존재하며, 예술작품과 동일한 위치에 놓인다. 기계복제시대에서 책 역시 재생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에 대한 태도와 그 분류는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3
예술작품으로서의 책, 북웍스(Book-works)로 정의되는 아티스트 북은 책의 형식으로 구현된 예술 작업이고 일반적으로 소량 인쇄된다. 책은 수세기 동안 아티스트의 매체로 활용되었으며, 특히 저 예산으로 제작된 아티스트 북은 대중적 보급이 가능한 책이라는 출판의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예술에 대한 민주주의적 접근을 시도했다. 60-70년대 아방가르드의 예술적 실천과 무브먼트의 형식으로 존재했던 아티스트 북은 아티스트의 자율적인 제작방식으로 생산된, 궁극에는 예술의 대중적 접근을 좀더 용이하게 만든 공공성을 띤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오늘날의 아티스트 북은 하나의 새로운 장르이자, 매체로서 인식된다. 종종 포트폴리오 대용으로 또는 셀프 프로모션을 위한, 아니면 예술작품으로의 북아트가 있겠다. 여기서 디자이너는 아티스트들의 컨텐츠가 책이라는 매체로 전이되는 과정 속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종종 아티스트 북 제작에 있어 작가들이 컨텐츠만 제공한다면, 과연 아티스트 북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한편 같은 컨텐츠 임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 북과 전시 도록이 다르게 취급되는 점 역시 매우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건 왜 일까.
아티스트 북, 아티스트 진과 같은 출판물들은 책을 생산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등장과 함께한다. 그렇다면 책의 주체는 누구인가. 저자, 편집자, 독자, 예술가인가. 분명 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을 그 대가로 치렀고, 저자 외의 주체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 말은 곧 텍스트를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는 디자이너 역시 새로운 주체로 상정할 수 있게 해준다. 아티스트 북이 디자이너를 생산적 주체로 구축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디자인의 저자로서의 디자이너에 대한 개인적 존중을 가능하게 하고, 디자이너의 작업을 “실존의 예술”로 변용시키기 때문이다.
그래픽 디자이너들 중에서 몇몇 디자이너의 책들은 미술사적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예술 작품으로 재분류되는 경우가 있다. 디자이너는 전시를 통해 예술가로 새롭게 위치 지어지고, 디자인 작업은 미술관에 소장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디자이너가 생산한 책들 역시 아티스트 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아티스트 북에는 두 명의 저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바로 하나는 컨텐츠의 저자이고, 두 번째는 디자인의 저자이다.
“디자인은 컨텐츠가 없다면 빈 껍질에 불과하며, 어떤 가치도 없다”라는 잘못된 관점이 오랫동안 고착되었고, 디자인과 예술의 관계처럼 디자인은 컨텐츠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항상 디자이너, 특히 책을 만드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컨텐츠를 포장하고 판매하기 위한 세일즈맨의 역할을 해왔다. 디자인의 영역이 “컨텐츠의 저자”가 아니라 “형식을 만드는 것”으로 한정되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에서이다. 이에 대해서 마이클 락(Michael Rock)은 약간 도발적인 방식으로 디자인이 컨텐츠에 비해 평가 절하되고 있음을 비판하며, “저자로서의 디자이너(Designer as Author)”를 강조한다(마이클 락의 『Designer as Author』 참조).
4
아티스트 북, 아티스트 진과 같은 국내 독립 출판물은 단일한 분류와 주체들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고 주체들의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런 형식의 출판들이 고민과 비판 없는 자기 생산적 활동으로만 연명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명확하지 않은 현재의 상태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의 조건으로 독립 출판물을 어떤 식으로 해독할 것인지,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 부분은 다른 지면이나 기회에서 보다 자세히 다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보다 책을 좋아했고 그래서 말년에 눈까지 멀어버린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The Library of Babel)>에서 일종의 책의 불가지해한 부분을 언급했다. “어떤 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책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단지 불가능한 책만이 존재할 가능성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책의 불가능성은 그 가능성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바벨의 도서관’은 모든 책의 특이성을 담지하는 장소이다. 그렇다면 책의 불가능성은 그 가능성의 조건 아래에서 ‘보편적’이고 ‘특이한’ 속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술로서의 책, 책으로서의 예술, 분류가 불/가능한 책, 기존의 질서를 혼동에 빠뜨릴 법한 책들은 존재의 부/정당성을 ‘바벨의 도서관’ 안에서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A는 책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경향이 가지고 있다. A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B가 책을 빌려가거나, 혹은 빌려간 책에다가 줄을 긋거나 책을 접는 행동이었다. 책에 대한 A의 이러한 태도를 B는 자주 비난하곤 했는데, 그것은 책의 오리지날 기능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A는 책에도 등급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등급에 따라 취급 방식도 다르다고 여겼다. 반면 B는 책은 장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A처럼 조심스럽게 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A는 종종 책의 컨텐츠보다 형식, 즉 디자인에 집중했다. 한 패션지를 예로 들며, 잡지 내용은 일반의 것과 다를 바 없지만 디자인이 좋기 때문에 이것 또한 아티스트 북이다라고 A는 말한다. A, B는 현재 아티스트 북을 출판하는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고, 여전히 일반 도서와 아티스트 북의 개념과 분류 문제 등에 있어서 결론을 제시하지 못한다. A와 B의 의견 대립은 책에 대한 기본 관점이 다르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A와 B 모두 독립 출판물 또는 아티스트 북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규정이 확고하지 않다. 단지 A는 디자인이 좋은 책도 일종의 아티스트 북이 된다고 여기지만, B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 뿐. 따라서, 문제가 되는 지점들을 살펴보면 첫 번째는 책의 분류이며, 두 번째는 책의 주체들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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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의 범주는 단행본에서 정기/비정기 간행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일차적으로 출판사가 결정한다. 최근 출판사가 기획한 책들을 보면, 여행과 미술이 결합된 여행서나 사진 에세이집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미술서도, 여행서도 아닌 이런 종류의 책들은 종종 출판사가 지정한 분류 범주와 상관없이 대형서점에 의해 재분류된다. 똑같은 책이 어떤 서점에서는 미술코너에서, 다른 서점에서는 여행코너에서 판매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여행서로 분류되었을 때 훨씬 더 판매량이 높다는 이유에서이다. 결국 책에 대한 분류는 특정 기관의 심의 없이 출판사의 자의적인 결정권에 속해있고, 이차적으로 그 책을 배급하는 서점에 의해서 다시 걸러진다. 정보의 표준화를 위해 설정된 십진법 체계의 분류법이란 결국 숫자놀이에 불과한, 상당히 유연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궁극에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대중에 의해 분류되는 전이의 과정에 놓여 있다.
얼핏 보기에 느슨한 이 분류 체계속에서 미디어버스와 같은 독립 출판사가 생산한 책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진(Zine)이라 범주화되는 순간, 진의 외연적 의미는 자동적으로 책이 아님과 맞물려져 작용된다. 따라서 도서/비도서, 전문/일반, 영리/비영리의 분류에 있어서 미디어버스의 아티스트 진은 비도서, 전문, 비영리에 해당이 된다. 오히려 도서/비도서의 이분법적 분류에서 벗어나 하나의 문화예술운동이라 공고할 때 대중과의 소통이 가능하며, 이것은 독립 출판물을 이해하려는 독자들의 독자적 이해 방식이 볼 수 있다. 책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분량과 부피, 그리고 보존하기 위한 표지가 있어야 하는데, 유네스코는49페이지 이상의 것을 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규정에서 밀려난, ISBN 낙인이 찍히지 않은 소책자나 1인 출판을 실천하는 다중들의 인쇄물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취급할 것인가. 기존 분류 체계에 우리와 같은 독립 출판물이 예속되길 원한다면, 이것은 소통하기 위해 기존의 분류 기준에 맞춘 필연적인 합의나 전략적인 제휴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독립 출판물의 역사적 소속을 드러내기 위해서 굳이 작위적인 분류를 설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립 인쇄물을 출판하는 미디어버스는 특히 예술 영역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출판을 매개로 한다는 의미는 기존의 출판(Publishing)이라는 개념을 인쇄물에 한정 짓기보다는 CD, DVD 등 다양한 매체들로 포괄하고 있으며 ‘Making Public’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아티스트 북의 경우, 하나의 장르이자 매체로 고착되면서 양가적인 속성을 지닌다. 그것은 대중적인 보급을 전제로 하되, 에디션을 주어 한정 발행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책들은 미술작품처럼 작품으로 취급하기도 애매하거니와, 일반 출판 시장에 속하기도 석연치 않다. 어떻게 보면 우리와 같은 독립 출판사들이 내놓은 책들은 현재 ‘미분류’ 상태에 놓여있다.
미디어버스가 기획자들과 디자이너들로 구성되었다면, 매뉴얼은 즉흥전자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에 의해서 운영된다. 이처럼 책을 만드는 주체들에 따라서 책의 종류 역시 다원화되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버스와 매뉴얼은 이러한 책들을 생존시키기 위해, 자체 유통망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조달하기 위해 이벤트를 만들었다. 작년 8월경에 열렸던 스몰 파켓(Small Packet)이었다. 진 페어의 형식을 취한 스몰 파켓은 해외 및 국내 진들을 전시하며 한 켠에서 책을 판매하였다. 이러한 일회적인 움직임은 말 그대로 이벤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고, 그 중 서가식의 간이 부스를 제작하여 특정 공간에 설치하자는 의견도 포함되었다. 독립 출판물의 생산과 배급, 위치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이러한 움직임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렌(Rennes)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키오스크: 증식의 방식(KIOSK: Modes of Multiplication)’ 이 그 중에 하나이다. 2001년부터 현대미술, 디자인, 현대 그래픽 디자인 영역에서 출간된 독립 출판물 6,000 점 이상을 전시하는 이 행사는 ‘리볼버 Revolver’을 설립하고 ‘JRP/Ringier’ 출판사를 운영했던 크리스토프 켈러(Christoph Keller)에 의해서 2001년에 기획되었다. 키오스크 아카이브는 독립 출판물이 재생산되고 유통되는 다양한 방식들에 주목하여 이를 명확하게 구분 지으려고 한다. 키오스크는 공공장소에서 대중들이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키오스크에 놓인 책들은 대중적인 잡지나 신문 등으로 미디어버스와 같은 독립 출판물이 키오스크의 형태로 공공장소에 배급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역설적으로 크리스토프 켈러가 독립 출판물의 키오스크를 선택한 것은 독립 출판물에 대한 새로운 분류와 대중성과 공공성을 함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동시에, 기존 출판 시장에 대한 대안으로의 자구책이라 볼 수 있다. 이 책들은 파리에서 하는 전시를 마지막으로 2009년 여름 베를린 예술도서관(Kunstbibliothek)에 전부 소장이 될 계획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어떤 범주로 6,000 권 이상의 책들이 분류될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반면 도서관으로 귀결되는 독립 출판물이 있다면, 미술관에 소장되는 작품으로서의 인쇄물도 존재한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 위치한 국립인쇄예술센터 CNEAI (National Center of Imprinted Art)는 아티스트 북(Artists’ books)과 아티스트에 관한 책(Artists’ publications) 들을 구분하고 소장하고 있다. 고서가 아닐 지라도, 심지어 시중에 판매가 되고 있는 아티스트 북일지라도 이곳에서 인쇄물의 가치는 하나의 신화로 존재하며, 예술작품과 동일한 위치에 놓인다. 기계복제시대에서 책 역시 재생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에 대한 태도와 그 분류는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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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으로서의 책, 북웍스(Book-works)로 정의되는 아티스트 북은 책의 형식으로 구현된 예술 작업이고 일반적으로 소량 인쇄된다. 책은 수세기 동안 아티스트의 매체로 활용되었으며, 특히 저 예산으로 제작된 아티스트 북은 대중적 보급이 가능한 책이라는 출판의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예술에 대한 민주주의적 접근을 시도했다. 60-70년대 아방가르드의 예술적 실천과 무브먼트의 형식으로 존재했던 아티스트 북은 아티스트의 자율적인 제작방식으로 생산된, 궁극에는 예술의 대중적 접근을 좀더 용이하게 만든 공공성을 띤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오늘날의 아티스트 북은 하나의 새로운 장르이자, 매체로서 인식된다. 종종 포트폴리오 대용으로 또는 셀프 프로모션을 위한, 아니면 예술작품으로의 북아트가 있겠다. 여기서 디자이너는 아티스트들의 컨텐츠가 책이라는 매체로 전이되는 과정 속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종종 아티스트 북 제작에 있어 작가들이 컨텐츠만 제공한다면, 과연 아티스트 북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한편 같은 컨텐츠 임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 북과 전시 도록이 다르게 취급되는 점 역시 매우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건 왜 일까.
아티스트 북, 아티스트 진과 같은 출판물들은 책을 생산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등장과 함께한다. 그렇다면 책의 주체는 누구인가. 저자, 편집자, 독자, 예술가인가. 분명 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을 그 대가로 치렀고, 저자 외의 주체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 말은 곧 텍스트를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는 디자이너 역시 새로운 주체로 상정할 수 있게 해준다. 아티스트 북이 디자이너를 생산적 주체로 구축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디자인의 저자로서의 디자이너에 대한 개인적 존중을 가능하게 하고, 디자이너의 작업을 “실존의 예술”로 변용시키기 때문이다.
그래픽 디자이너들 중에서 몇몇 디자이너의 책들은 미술사적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예술 작품으로 재분류되는 경우가 있다. 디자이너는 전시를 통해 예술가로 새롭게 위치 지어지고, 디자인 작업은 미술관에 소장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디자이너가 생산한 책들 역시 아티스트 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아티스트 북에는 두 명의 저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바로 하나는 컨텐츠의 저자이고, 두 번째는 디자인의 저자이다.
“디자인은 컨텐츠가 없다면 빈 껍질에 불과하며, 어떤 가치도 없다”라는 잘못된 관점이 오랫동안 고착되었고, 디자인과 예술의 관계처럼 디자인은 컨텐츠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항상 디자이너, 특히 책을 만드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컨텐츠를 포장하고 판매하기 위한 세일즈맨의 역할을 해왔다. 디자인의 영역이 “컨텐츠의 저자”가 아니라 “형식을 만드는 것”으로 한정되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에서이다. 이에 대해서 마이클 락(Michael Rock)은 약간 도발적인 방식으로 디자인이 컨텐츠에 비해 평가 절하되고 있음을 비판하며, “저자로서의 디자이너(Designer as Author)”를 강조한다(마이클 락의 『Designer as Autho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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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북, 아티스트 진과 같은 국내 독립 출판물은 단일한 분류와 주체들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고 주체들의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런 형식의 출판들이 고민과 비판 없는 자기 생산적 활동으로만 연명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명확하지 않은 현재의 상태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의 조건으로 독립 출판물을 어떤 식으로 해독할 것인지,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 부분은 다른 지면이나 기회에서 보다 자세히 다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보다 책을 좋아했고 그래서 말년에 눈까지 멀어버린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The Library of Babel)>에서 일종의 책의 불가지해한 부분을 언급했다. “어떤 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책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단지 불가능한 책만이 존재할 가능성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책의 불가능성은 그 가능성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바벨의 도서관’은 모든 책의 특이성을 담지하는 장소이다. 그렇다면 책의 불가능성은 그 가능성의 조건 아래에서 ‘보편적’이고 ‘특이한’ 속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술로서의 책, 책으로서의 예술, 분류가 불/가능한 책, 기존의 질서를 혼동에 빠뜨릴 법한 책들은 존재의 부/정당성을 ‘바벨의 도서관’ 안에서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versus 심포지엄 & 출판기념회

갤러리 팩토리에서 버수스라는 부정기 간행물이 출간되었고 아트디렉터로 참여하신 최승훈+박선민씨와 정연씨, 내가 심포지엄이라고 하기는 매우 캐주얼한 행사에서 간단하게 토크를 진행했다. 우리가 불려간 것은 분명히 우연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버수스는 멋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주출판의 의미와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매우 짧게 이야기를 했는데 어설픈 원고를 준비한 것이 실수였다. 뭐 어쨌든 어리버리 다행히 끝이 났다. 짧은 글이라서 여기에 한번 올려 본다. 사진은 팩토리 블로그에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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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팩토리 자주출판 심포지엄
2008.08.30
mediabus editor 임경용
자주출판의 의미와 가능성 - 침묵을 측정하기 measuring silence
독립출판, 자주출판, 소규모 출판?
들어가기 전에 미디어버스라는 독립출판사(자주출판사, 소규모 출판사, 진 출판사 등으로 호명되는)의 구성원으로써, 이런 범주로 지칭되는 일련의 출판 공동체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실 심포지엄이라면 무엇을 발표하고 대화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의 조건에서 독립출판 혹은 자주출판이라는 영역이 독점적으로 구축한 지식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는 우리의 활동을 독립 출판이라는 영역의 일부로 호명하는 외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구축한 지식은 미디어버스라는 소규모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얻어진 경험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며 이차적으로는 지금 이 자리와 같은 유사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축척한 지식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같이 고민해야 하는 첫 번째 문제는 어떤 씬, 영역에서 어떤 목적,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호명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90년대 중후반에 있었던 독립문화, 소위 대안공간이나 독립영화 활동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지금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제도에 대한 저항의 흔적을 독립 출판 영역 안에서 발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지점의 요구에 대해 응답을 할 때에는 즉각적인 응답이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의도적인 지연의 전략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선 전자에 대한 것으로써, 자주출판의 사회적 의의라고 부를만한 것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소한 저에게 독립 출판 혹은 자주출판이 기존의 출판 행위와 다른 점은 이 영역이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다양한 작인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에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언제나 사회 내에 존재해왔던 잠재적인 작인들을 발견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차이들(차이라는 말로는 불충분할 수 있습니다만)을 결정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예술 영역에 집중이 될 것인데, 과연 영화나 미술, 디자인, 음악 등과 차별되는 출판 고유의 역할이 있는가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물론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도 중요하겠지요. 우리는 영화가 종합예술 매체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이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출판은 기존의 장르의 형식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장르의 몽타주라고 부를만한 특이한 형식을 실험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씨네아스트는 자신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거쳤던 콘티, 시나리오, 낙서들까지 출판을 할 수 있고 음악 CD나 영화 결과물 DVD까지 이 출판물에 통합시킬 수 있습니다. 1965년부터 71년까지 총 10회 발간된 아스펜Aspen이라는 멀티미디어 잡지는 어느 정도 이런 실험의 맥락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독립/자주출판의 유연함은 기존의 딱딱하고 도식적인 출판 방식(책의 신성화라고 부를 수 있는)에서는 수용되기 힘든 것입니다.
이것은 자주출판, 소규모 출판이 즉각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도적인 지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말로 설명하긴 힘든데, 원래 자주출판이라는 것이 개인의 욕망에서 시작되어 거창하다기 보다 말로 설명하면 매우 하찮아 지는 것입니다. 자주출판은 사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오래된 테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미디어버스나 다른 자주출판사에게 자신의 정체성이나 활동 목적을 질문한다면 사실 크게 할 말이 없을 겁니다. 그냥 출판사를 냈고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출판을 합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반응은 독립출판, 자주출판의 분류의 문제와 연결이 됩니다. 분류될 수 없고,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려는 속성이 분명히 독립출판의 영역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독립출판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독립출판의 한 형식으로 치부되는 진zine은 소규모 자주출판 운동을 총칭하는 개념입니다. 이런 움직임 역시 자기 스스로든, 외부의 요구에 의해서든 자신의 역사를 기술하고 어필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의 무브먼트로서 진은 내부의 역사를 가지고 있겠지만 진의 생산자인 진스터zinester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활동을 진의 역사 내부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고 개인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사건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것은 그들이 과거에는 말할 수 없던 주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이나 테크놀로지에 의해 개인적인 것이 전유되거나 왜곡되고 있고 블로그나 UCC 같은 개인 미디어조차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조차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지 않으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소비되기 십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자신의 활동을 자본이나 제도 외부에 위치시키는 것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 내부의 말할 수 없는 자들에 대한 접근을 피에르 마셔레이는 '침묵을 측정한다measuring silence'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독립출판, 자주출판이라고 총칭하는 움직임에는 두 가지 태도가 모두 요구됩니다. 하나는 자주 출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과 연관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욕망에서 시작된 이 움직임이 끝까지 자본이나 사회 제도 외부 혹은 내부에서 독립된 영역을 가지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자주출판의 지속, 생존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독립출판, 자주출판, 소규모 출판 등등. 사실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구별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출판 주체가 자신을 스스로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범주는 외부의 시선이나 제도가 어떤 현상을 구획하고 절합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ISBN의 예를 들어보자면 국가가 어떤 출판물을 관리하는 방식에 독립이나 자주, 소규모 출판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개념(아니면 범주)은 어쨌든 간에 출판 주체라고 부를 수 있는 일군의 집단들이 자신의 범주를 적극적으로 발명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독립이라는 말에 강세를 둘 때는 사실 하위문화, 급진적 문화 생산자를 위한 플랫폼 정도로 생각이 들게 됩니다. 제가 '자주출판'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인의 요구에서 시작되어 사회적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출판의 잠재적인 작인들을 고려해서 입니다. 그리고 그것 안에서 개인적 출판 행위의 무책임함 속 정당성을, 사회의 침묵하는 자들을 측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의 확장
세상에는 수많은 출판물들이 존재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자주 출판물은 매우 작은 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지금 하나의 독립된 씬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판단되지만, 70, 8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몇몇 잡지들, 작가들이 소규모 출판 형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작품을 생산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의 시장으로 성장하고 자신의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토대가 되지 않았기에 이들의 활동은 간헐적이고 임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소규모 출판 편집자들은 출판 전문인이 아니라 다른 베이스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반 직장을 가지신 분들도 있고 아예 출판과는 다른 영역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우리가 출판 혹은 출판사라고 부르는 것은 기존에 우리가 이해하는 범주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을 아마츄어리즘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것이 자주출판의 다문화성(원래 사용되는 맥락과는 다소 틀리지만)이라고 생각합니다. 퍼블리싱의 범주 안에 자연스럽게 외부의 요소가 투여되는 것. 다양한 요소들을 전용하여 새로운 맥락을 만드는 것. 어찌 보면 제가 오늘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지금 이런 자주 출판, 독립 출판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하나의 씬을 형성하고 있는 스위스는 전형적인 다문화 사회입니다. 4개 국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고 거대 이데올로기나 특정한 집단의 경제적 이익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문화성은 그 사회의 관용성 혹은 환대hospitality의 개념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환대의 문제는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스위스, 특히 취리히는 유럽에서도 모더니즘이 발아되고 새로운 지성의 흐름이 시작된 중요한 장소입니다. 지난 바젤 아트페어에서는 니브스와 유즈드 퓨쳐라는 소규모 출판사가 중심이 된 진 스토어가 운영되었고, 다양한 진 서점, 출판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금 정리를 하자면 지금의 조건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쓰일 수 있는,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요구가 뒤섞여서 이 둘을 구별할 수 없는 그런 결정 불가능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자주출판은 개인의 욕망이 사회적 요구로 연장되는데 있어서 가장 용이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디어버스의 역할이 그런 것 같습니다. 시작은 개인적인 요구와 열정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어느 순간 느슨한 사회적 연대 안에서 활동의 지속 가능성과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독립출판, 자주출판의 본질은 아니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정확한 지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이것은 매뉴얼이라는 류한길씨가 운영하는 레이블의 기본 모토입니다만) 이런 활동을 보급하는 것이 지금 매우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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