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pe Gallery








Same Elements


sheriff



Winery Herbert Vandasye / Label / Anouncement

The 2007 Insomnia Film Festival

The Insomnia Film Festival is back—and while the world sleeps, you could be making film history.

Calling all high school and college filmmakers.

On Saturday, October 13 at 9:00 a.m. (Eastern time), we’ll post a top-secret list of elements — special props, dialogue, settings — you get the idea. Choose any three to include in your movie. Then all you and your team have to do is write, cast, shoot, edit, score, and upload your 3-minute masterpiece within 24 hours. No problem, right?

Once the films are in, your friends, family, and adoring fans will be able to watch them online and rate their favorites. The 25 entries with the highest rating on November 9 at 12:00 a.m. EST will be screened by industry professionals, including Barry Sonnenfeld, James Mangold, and Nora Ephron.

If your film is the biggest hit with either the public or the pros, each member of your team will receive a MacBook Pro, Final Cut Studio 2, Logic Studio, and Shake so you can get started on that first sequel. How’s that for a Hollywood ending?

MAP Jin Jung 01: No where To stay



Jin Jung

베르나르 브네 : 철로 그리다





Busan Museum of Modern Art

MAP Jin Jung 01: No where To stay



MAP 정진열 01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미디어버스 웹사이트에는 다음주쯤 새 책들과 새 소식으로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현재 미디어 버스 책들은 오프 매장으로
대학로 이음아트에 입점을 했습니다!
대학로에 오시는 분들은 살짝 들려 보시는 것도 좋을 듯.
또 다른 새 책으로 타이완 출신 작가, Iling의 MAP이 나옵니다.
URABAN CIRCUS이란 타이틀 처럼, 일링의 진은 도시의 변화무쌍하고, 다이내믹한 일상의 단면들이 담긴 드로잉 북입니다.

DJ SPOOKY IN SEOUL







소문난 파티에 먹을거 없다더니...

주유소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가 드디어 번역이 되어 나왔다. (사실 몇 달 되었다) 그간 인용문을 통해서만 접했던 이 책을 직접 들어보니 마치 죽은 자식이 품 안에 돌아온 기분이다(에드가 알란 포우 단편 '원숭이 손'에서 돌아온 자식과는 다른 어감이다) 어쨌든 이 책의 첫 번째 글(나머지 글도 마찬가지이다)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박승준 표현을 빌리자면) 양껏 사랑해줘야 겠다. 그리고 어디선가 봤는데 벤야민은 이 책의 표지(한국어판에서는 표현의 정도가 많이 죽었는데)를 좋아했다고 한다. 정말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이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 한 권씩 사서 품 안에 넣어두었다가 공산당이 쳐들어오면 이걸로 머리를 후려쳐야 할 것이다. (정말 이 정도면 신갈에 있는 하얀 병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 첫번째 글을 인용해본다. 설마 출판사 측에서 나의 머리를 후려치진 않겠지! 그리고 덧붙이자면 공공도큐멘트에서 하고 싶은게 바로 이거다. 어디에 무엇이 어떻게 생존해있는지 지도를 그리는 것. 기름을 쳐줄 생각은 감히 못하고 있다.


주유소

지금 삶의 구성은 확신보다는 훨씬 더 사실들의 권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거의 한 번도, 단 한번도 확신의 토대가 되어보지 못한 사실들에 의해. 이러한 상황에서 참된 문학 활동이 문학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길 바라서는 안 된다 - 그러한 표현 자체가 오히려 문학 활동의 불모성을 보여주는 낡아빠진 말이기도 하다. 문학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행동과 글쓰기가 엄격하게 교대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려면 괜히 젠 체하기만 하며 일반적인 제스처만 취하고 마는 저서보다 현재 활동 중인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기에 훨씬 더 적합한, 언뜻 싸구려처럼 보이는 형식들, 즉 전단지, 팜플렛, 신문 기사와 플랫카드 등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처럼 기민한 언어만이 순간순간을 능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온갖 의견이 사회적 삶이라는 거대한 장치에 대해 갖는 관계는 기름과 기계의 관계와 동일하다. 아마 터빈 위에 서서 위에다 기계유를 쏟아 부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감추어져 있는 축이나 이음매에 기름을 조금 쳐주는 것이 다일 텐데, 그러자면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 일방통행로 가운데, 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Public Sphere


The concept of Public Sphere was first introduced by Jürgen Habermas, in his book,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 – An Inquiry into a Category of Bourgeois Society (originally in German and later translated into English). Through this work, he gave a historical and sociological account of the rise and decay of the so-called public sphere. Woman, working classes and minorities were all excluded from this space, but that's beside the point. The German term Öffentlichkeit (Public Sphere) encompasses a variety of meanings and it implies to a spatial concept, the social sites or arenas where meanings are articulated, distributed, and negotiated, as well as the collective body constituted by, and in this process, "the public" (Negt and Kluge 1993).
공공영역의 개념은 하버마스의 책 '공공영역의 구조적 변이'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책에서 그는 역사적이고 사회학적으로 공공영역을 다룬다. 여성, 노동자, 소수자들이 이 공간에서 배제된다. 공공영역은 공간적인 개념으로 의미들이 절합, 배분, 협상되는 사회적 장소 혹은 격전장으로 이해된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대중 the public'이라는 집합적 신체도 등장한다.
The public sphere denotes specific institutions, agencies, practices; however, it is also a general social horizon of experience in which everything that is actually or seemingly relevant for all members of society is integrated. Understood in the sense, the public sphere is a matter for a handful of professionals (e.g., politicians, editors, union officials) on the one hand, but, on the other, it is something that concerns everyone and that realises itself only in people’s minds, in a dimension of their consciousness." (Negt and Kluge, 1993)
공공영역은 특정한 제도들, 작인, 실천을 함의한다. 그러나 또한 경험의 일반 사회적 지평이기도 한데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통합되는 것과 관련 있는 실질적이거나 시각적인 모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공영역은 수많은 직업(정치가, 편집자, 노조 등)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들의 의식의 차원에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 실현되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The concept of public sphere as expressed by Habermas (1989) has existed in its true sense in the UK since the 18th century. The coffee houses in London society at this time became the centres of art and literary criticism, which gradually widened to include even the economic and the political disputes as matters of discussion. In French salons, as Habermas says, "opinion became emancipated from the bonds of economic dependence". Any new work, or a book or a musical composition had to get its legitimacy in these places. It not only paved a forum for self-expression, but in fact had become a platform for airing one’s opinions and agendas for public discussion.
하버마스가 이야기하는 공공영역 개념은 18세기 이후 영국에서 보존되어 온 것이다. 런던의 커피 집은 예술, 문학 비평의 중심지가 되었고 점차 경제적이고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갔다. 프랑스의 살롱은 하버마스의 말에 따르자면 "의견들은 경제적 의존의 결합에서부터 해방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작업이나 책, 뮤지컬들은 이러한 공간에서 검증을 받아야 했다. 이것은 자기 표현을 위한 모임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대중적 논의를 위한 개인적 의견 혹은 의제를 알리기 위한 창구가 되었다.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paved the way for a new kind of public sphere with its changed institutional forms of political power. With the emergence of civil society and modern government, the privatised economic relations were brought under the area of public authority. The private realm comprised both the public economic relations and the private intimate relations and to negotiate between these two there emerged a new bourgeois public sphere. It comprised groups of individuals who would debate and discuss and regulate the civil society through constructive criticism.
자본주의의 발전은 정치권력의 제도적 형식에 대한 변화와 함께 새로운 공공영역을 만들어 냈다. 시민 사회, 근대 정부, 사유화된 경제적 관계의 등극은 대중 주권 아래로 들어간다. 공공과 개인 양자를 결합하는 사적 시대와 이들 사이의 협상으로 새로운 부르주아 공공영역이 형성되었다. 이것은 토론을 하는 개인 공동체를 구성하며 구성적 비평을 통해 시민 사회를 조정한다.
The emergence of bourgeois public sphere was particularly supported by the 18th century liberal democracy making resources available to this new political class to establish a network of institutions like publishing enterprises, newspapers and discussion forums, and the democratic press was a main tool to execute this. The key feature of this public sphere was its separation from the power of both the church and the government due to its access to a variety of resources, both economic and social.
부르주아 공공영역의 등장은 부분적으로 18세기 자유 민주주의에 의한 것으로 신문, 토론 포럼 출판처럼 제도의 네트워크를 만든 새로운 정치적 계급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공공영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교회와 정부의 권력에서 분리된 것인데,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다양한 원천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As Habermas argues, in due course, this sphere of rational and universalistic politics, free from both the economy and the State, was destroyed by the same forces that initially established it. The growth of capitalistic economy led to an unfair distribution of wealth, thus widening the economic polarity. This resulted in limiting access to the public sphere and the political control of the public sphere was inevitable for the modern capitalistic forces to operate and thrive in the competitive economy.
하버마스는 합리적이고 보편적 정치학의 영역은 경제와 국가 양자에서 자유로운데, 자신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힘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이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가져왔고 경제적 복수성을 확장한 것이다. 이것은 공공영역 접근에 대한 제한을 가져왔고, 공공영역의 정치적 통제는 근대 자본주의 권력을 피할 수 없게 된다.

-wiki pedia

Tokyo Story


2000.03.30 - 2000.04.30

The Urban Gallery - Tokyo Story is a project organised by CHORA architecture and urbanism in collaboration with the Architectural Association London, the Berlage Institute Amsterdam and Tokyo University. During a one week event the Urban Gallery provides an interactive space that enhances by its given interactive structure a necessary negotiation process for urban planning. As a new planning tool for complex urban environment, it is testing its potentials for a new practise: urban curation. The Urban Gallery is both, physically rooted in a specified location in Tokyo and non-physically embedded in an interactive e-space with link support teams in London, Tokyo Shanghai and Amsterdam. In that Gallery various urban actors and agents are brought together to design the Tokyo Story. It contains four main spaces

도시 갤러리-동경 이야기는 쇼라 건축그룹에 의해 기획된 프로젝트로 어소시에이션 런던, 암스테리담 버레즈 인스티튜트와 동경 대학과 함께 진행되었다. 일주일 동안 도시 갤러리는 도시 설계를 위한 협상 과정을 구조화하는 인터렉티브한 공간을 제공했다. 복합적인 도시 환경을 위한 새로운 기획 도구로써, 새로운 실천을 위한 잠재성을 시험하는 것으로 '도시 큐레이팅'을 진행했다. 도시 갤러리는 물리적으로는 동경의 특정한 장소를 점하고 있었으며, 비물질적으로는 런던, 동경, 상하이와 암스테르담의 보조 인력과 상호 작용적인 인터넷 공간 안에 스며들어가 있었다. 이 갤러리에서는 다양한 도시 행동가와 작인들이 동경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협업하고 있었다. 이 공간에는 4가지 주요한 공간이 있었는데 첫째로는 도시 안에서 관찰된 현상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두번째는 개입을 위해 공수된 도구인 프로토타입, 세번째는 이러한 현상 사이에 벌어지는 상호작용과 가능한 현실에 대한 시물레이션 게임, 마지막으로 이러한 프로토타입들의 즉각적인 완성을 위한 절차로서 행동 계획이 그것이다.

database: a collection of observed urban phenomena
prototypes: imported devices for intervention
scenario games: simulation of possible realities and interactions between those phenomena
action plans:
procedure for immediate implementation of those prototypes

The Tokyo Story is aiming at the formulation of urban prototypes. Urban prototypes are engines of change, instruments of new urban form, linking as an organisational structure larger contexts to specific environments. The Tokyo Story is a life project unfolding in between the 30.03.00 and the 05.04.00. That real-time product becomes an instant exhibition space after the event which will be hosted beyond others by the Venice-Biennale Web site and the Graz media & architecture Web site.

동경 이야기는 도시 프로토타입의 형성을 목적으로 한다. 도시 프로토타입들은 새로운 도시 형식의 도구로써, 변화를 위한 엔진이며 특정한 환경과 조직된 구조적 맥락으로 연결된다. 동경 이야기는 2000년 3월 30일부터 2000년 4월 5일 까지 이어지는데 실시간으로 만들어진 결과물들은 행사 이후에 전시 공간에서 보여지며 베니스 비엔날레 웹사이트와 그라즈 미디어, 건축 웹사이트에도 올릴 예정이다.

Chungmuro Project Review


어쨌든 충무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이상 야릇 비릿한 뭔가가 종결되었다. 책이 만들어지면서 끝난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많이 고민을 했고 마음과 몸 모두 무척 피곤했었다.

사실 난 충무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은 굉장히 애둘러져 드러났는데 사실 옥정호 사진이 그것이 아니었나 싶다.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것이 배경과 대상으로 관계 맺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존해가고 있는 것. 옥정호의 사진에서 보이는 충무로 거리 조성에 대한 현수막도 그렇다. 난 충무로 영화제를 비롯해서 이 사업이 참 마음에 안들었고 그래서 이렇게 나마 뭔가 시위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충무로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중첩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지금의 충무로는 과거의 의미와 현재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삶의 공간이다. 이게 가장 중요한 관점이었던 것 같다. 말은 쉽지만 사실 결코 쉽진 않다. 왜냐하면 도시는 실용적인 측면과 상징성, 역사성 이 두가지 다른 흐름이 계속 경합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유산을 계승하자는 보수적 관점이나 혹은 지역 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키자는 실용주의적 관점의 이분법 안에 포섭될 수 없는 것이 지역 자체,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로 대립될 것 같았던 보수적 관점과 실용적 관점이 사실 생각보다 그리 멀리 떨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상식을 벗어나면 사실 어떤 것도 이해되기 쉽진 않다. 그렇다고 내가 이 복합적인 중첩 자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변증법적인 공식으로 무언가가 절묘하게 결합되거나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고 아우르면서 앞으로 나가자는 그런 취지는 절대로 아니었다. 차라리 뭔가 투정하고 젠장 하면서 비판하는 쪽인데 결코 대안을 주진 못한다. 그냥 내가 들었던 생각은 뭔가 이건 아닌데 그렇다고 여기서 배를 까고 드러누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럴만큼 충무로 공간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위치도 아니며 그럴 생각도 없다. 사실 어느 누구도 이런 변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뭔가 발언할 위치에 있지 못하다. 오히려 문제는 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의 주체가 없다는 것. 이것은 과거 군사독재 정부 정책의 잔재일까?

그나마 충무로에 대해 가장 큰 권리를 가졌던 작인은 활력 연구소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말 여기에서 무언가를 해보기 위해 모였지 않은가! 나머지들은 잘 모르겠더라. 과거 충무로 영화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옛날 유산으로 돈을 좀 벌 수 없을까 생각하거나 아예 귀찮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도와주신 분들도 계시다) 인쇄소나 출판사들은 지금 돈을 벌기 위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거의 대부분은 아무 생각도 없으셨다. (물론 아닌 분도 계시고 해인기획 류명식 선생님은 이번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다) 과거 충무로 지역 극장들도 이제는 멸종 지경에 이르렀고 과거의 영화 문화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오죽하면 스카라 극장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된다고 하니까 발빠르게 철거하고 주차장을 만들었겠는가! 대한극장도 그냥 멀티 플렉스 극장이고, 극동 극장과 스카라는 없어졌고 명보 극장은 지지부진하다. 충무로 영화제는 말할 가치도 없고. 이 프로젝트의 주체이긴 했지만 충무로영상센터 역시 지금은 굴러가야 하기에 굴러가는 처지에 있다. (실제로 재미동이 생산해낸 텍스트는 내가 끄적거린 글을 빼고 이 책 안에서 가장 고민의 밀도가 떨어지고 구태의연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래서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반면 활력에 대해서는 무언가 좀 더 끄집어 내고 싶은게 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왜 그렇게 건축이나 디자인에 신경을 썼는지, 공간의 배치나 내부 공간 사이의 관계, 역할이 그토록 중요했는지 지금은 좀 알것 같다. 동시에 도시 안에서 건축이나 어떤 문화 공간이 하나의 프로그램처럼 기능해야 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00도큐멘트에서 좀 다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에 약간의 단초로 제시된 다이어그램을 좀 더 전면에 세워보려고 한다)

아직도 갈길은 멀고 이번 프로젝트는 결국 무거운 질문만 던졌을 뿐이다. 정말 아쉬운 것은 조금이나마 명확한 생각들은 모든 것이 끝난 다음에야 찾아온다는 것이다. 젠장이다.

Psychogeography


Psychogeography was defined in 1955 by Guy Debord as the "the study of the precise laws and specific effects of the geographical environment, consciously organized or not, on the emotions and behavior of individuals." [1]. A more straightforward definition is that it is "a slightly stuffy term that's been applied to a whole toy box full of playful, inventive strategies for exploring cities. Psychogeography includes just about anything that takes pedestrians off their predictable paths and jolts them into a new awareness of the urban landscape." [2] The most important of these strategies is the dérive.

사이코지오그라프는 1955년 기 드보르에 의해 정의된 개념으로 "의식적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개인들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지리학적 환경의 정확한 법칙과 특정한 효과들에 대한 연구"이다. 좀 더 직설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다소 지루한 용어로 재미있는 것이 가득한 장난감 상자, 도시를 탐색하기 위한 창조적 전략으로 적용되고 있다. 사이코지오그라프는 산책자가 예측 가능한 길을 벗어나서 새로운 도시 경관과 조우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리베이다.

- 위키피디아에서 인용

Chungmuro Project




Mediabus Project Publication

충무로 프로젝트는 과거 한국영화의 중심지였던 충무로 지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출판 및 전시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Chungmuro Project deals with the past korea films' mecca chungmuro's past, present and future in publication and exhibition.

Published in 2007
19 x 25 cm, 142 Pages
Color
Edition of 200
Designed by Ryu Hankil, Ahn Jiseong

Not for sale

High tech and Low tech


헥토르를 자세히 보다가 흥미로웠던 것은 자신들의 활동이 하이 테크와 로우 테크이 결합하면서 만들어지는 시적인 것을 겨냥한다(딱히 이 표현은 아니었지만)는 언급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진이라는 일종의 로우 테크적인 생산 방식을 통해 고민했던 지점이었다.
기본적인 전제는 로우 테크든 하이 테크든 양자 모두 테크놀로지라는 것이다. 이것이 만들어진 시기나 기술의 완성도에 의해 구분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언젠가 벤야민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가 파사쥬에 대해서 각별한 생각을 발전시켰던 것은 파사쥬가 가진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한때' 화려했던 파사쥬가 '현재' 우리에게 부여하는 당혹스러운 느낌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상품 자본주의의 물신주의가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본질에 있어서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한계와 연관이 있다.
로우 테크와 하이 테크가 혼합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 모순이다. 테크놀로지가 주는 매력은 그것이 그 속성상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심지어 미래의 다양한 계기들을 모두 품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에디슨보다 아인슈타인이 우월하거나 열등할 수 없는 것은 모든 과학자, 발명가, 테크니션까지 그들의 현재는 과거 누군가의 어깨 위에서만 성취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헥토르도 지적했듯이 이것의 혼합은 분명히 시적인 질(qualities of poetic)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사실 그것은 하이 테크와 로우 테크의 혼합 때문이 아니라 상품 자본주의 바깥에서 테크놀로지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경외심과 실망이라는 다소 모순된 감정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것은 없고, 저것(나)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를 위한 일종의 사다리 역할(퇴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 그것이 주는 씁쓸함, 공포 같은 것이 있다. 헥토르와 진(zine)처럼 아예 불능성, 소통 불가능성을 극대화시킨 결과물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로우 테크라고 부르고 지칭하는 것은 저 괴물-기계가 '내 눈 앞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공포의 혼합일 것 같다.

보들레르가 모더니티를 '일시적인 것'으로 정의했듯이 로우 테크는 현대 사회의 일시적인 속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해킹이나 오픈 소스 역시 그러한 공포의 다양한 변주 양상이 아닐까. 미디어버스는 꼭 그렇진 않지만 이 사회의 모든 것이 제도화 될 수는 없다는 공포를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 노스트라다무스의 공포의 대왕 미디어버스라.. 나 참. 착각도 이 정도면 병이다.

Hektor





Hektor is a portable Spray-paint Output Device for laptop computers. It was created in close collaboration with engineer Uli Franke for Jürg Lehni's diploma project at écal (école cantonale d'art de Lausanne) in 2002.
헥토르는 움직일 수 있는 스프레이 페인팅 기계이다. 엔지니어 울리 플란크가 융 레흐니의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하였다.

Hektor’s light and fragile installation consists only of two motors, toothed belts and a can holder that handles regular spray cans. The can is moved along drawing paths just as the human hand or old plotters would. During operation, the mechanism sometimes trembles and wobbles, and the paint often drips. The contrasts between these low-tech aspects and the high-tech touch of the construction hold ambiguous and poetic qualities and make Hektor enjoyable to watch in action.
헥토르의 가볍고 깨질듯한 설치는 단지 두 개의 모터와 벨트 그리고 스프레이 캔을 잡아주는 캔 홀더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이 깡통이 사람 손처럼 움직이면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움직이는 동안에 가끔씩 심하게 흔들리고 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로우 테크와 하이 테크의 극명한 대립은 헥토르가 움직이는 것을 관람하는 것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야심과 시적인 어떤 것을 부여한다.

Hektor was created with a certain attitude towards design and the use of tools. Intuition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search for a new output device that goes beyond the limitations of today's clean computer, screen and vector-graphic based design and conveys the abstract geometries contained in these graphics in a different way than normal printers do.
헥토르는 디자인과 도구의 사용이라는 측면에 대한 어떤 태도를 견지한다. 직관은 새로운 도구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오늘날의 말끔한 컴퓨터, 스크린과 벡터 그래픽의 한계를 넘어 일반 프린트가 수행하는 것 이상의 다른 방식의 추상적 기하학을 전달한다.

The aim was to make a statement about design by providing a new tool to other designers and artists to experiment with, a tool with an inherently particular and distinctive aesthetic.
이것의 목적은 다른 디자이너와 작가들에게 새로운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디자인에 대한 입장을 만드는 것이며, 이 도구를 통해 유일하고 특이한 미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Hektor's software is based on Scriptographer, a scripting plugin for Adobe Illustrator™ which was created by Jürg Lehni and made freely available out of similar motivations: Scriptographer gives the user the possibility to extend Illustrator’s functionality by the use of the JavaScript language. It puts the tool back into the hand of the user and confronts a closed product with the open source philosophy.
헥토르는 스크립토그라퍼라는 소프트웨어에 기반하고 있는데 어도브 일레스트레이터의 플러그인으로 융 레흐니에 의해 만들어져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다.
스크립토그라퍼는 자바스크립트 언어를 사용함으로서 일레스트레이터의 기능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다. 이 소프트웨어는 오픈 소스 철학에 기반하여 사용자가 스스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Both Hektor and Scriptographer are statements about today's desktop publishing design chain with all its standards and softwares, which have a strong influence on the aesthetics of the products. They are a call to the designers to not just accept the limitations and predefined ways of working of current software and make the reappropriation of their tools and the invention of new ones a part of their daily work flow.
헥토르와 스크립토그라퍼는 데스크탑 출판 디자인의 표준과 소프트웨어가 출판물의 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언급이다. 이것들은 디자이너들이 그 한계를 단순히 받아들이고 현재 소프트웨어의 한계 내에서 작업하지 않고 그들의 도구를 재전유하며 새로운 것을 작업 흐름 가운데 창조할 것을 종용한다.

In this frame of mind, Hektor was used for many projects in different contexts over the past years, often in collaboration with other designers and artists. Making the technology available to others made Hektor a very lively project.
이러한 기조 안에서 헥토르는 수년간 다른 맥락 안에서 많은 프로젝트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의미에서 헥토르는 매우 생명력있는 프로젝트이다.

For a detailed documentation of the project, the development, first tests and applications, please download Hektor.pdf (4.5 MB).
더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으면 링크되어 있는 PDF 파일을 다운 받을 것.

To see it in action, have a look at the videos.
작동되는 비디오를 보고 싶다면 다음 링크를 따라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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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거 발견! 미디어버스에 수용 가능성 탐색!

Hektor Meets Dexter Sinister


Hektor Meets Dexter Sinister
at the Swiss Institute Thursday September 6, 2007
6pm-12am

Swiss Institute
495 Broadway, 3rd Floor
New York NY 10012
swissinstitute.net
dextersinister.org

24 Hours and 33 Minutes


WNYC(New York Public Radio)에서 존 케이지의 95회 생일을 맞아(그렇다, 그는 92년에 사망했다, 살아있었으면 95세였을거라는 이야기다) 그의 인터뷰를 비롯한 여러 미공개 소스를 오픈했다. 24:33은 머스 커닝햄을 비롯해 현재 활동하는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이 존 케이지에 대한 소스를 제공하는 행사이다. 언제까지 우려먹을지 몰라도 내가 살아 있을때까지는 계속 될 것 같다. 그냥 조용히 보내주는 것도 미덕일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행사를 하면서 항상 들어가는 말이 있지 않나? "그는 죽었지만 그는 항상 시대를 앞서갔고 현재 우리에게도 유효한 것이 있습니다." 뭐 그 말이 딱히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노력으로 '현재 살고 있고' '현재를 앞서가는 사람'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그 앞섬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건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겸손함일까?

Shigeko Kubota-My life with Nam June Paik


저번에 이 할머니 티브이에서 봤는데 상태 별루 안좋으시던데-_-;;

Small Packet Review


이제 스몰 파켓이 끝난다. 여러가지 문제도 있었고 가능성도 있었다. 여하튼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고 이런 과정 아래에서만 다음 행사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 저번 토크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나의 생각을 적어본다.

토 크를 진행하면서 이 행사의 홍보 (홍보에 대한 문제는 행사장 위치에 대한 고민과 연관되었는데) 문제가 떠올랐다. 홍보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였지만 몇몇 게시판 정도에 글을 올린 것과 독자적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매뉴얼과 미디어버스 홈페이지를 통해 하는 홍보에 그쳤다. 또한 이것과 연관되어서 지역 문제도 떠올랐다. 물론 지금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신은 홍대 주변에 형성되고 있다. 이건 10년 전부터 항상 그러했는데 대부분의 문화 기획자, 문화 관련 시설들이 홍대에 집약적으로 모여있고 공연이나 전시 역시 그렇다. 물론 스몰 파켓 페어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다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홍대 주변에서 이 전시가 진행되었을때 파급 효과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어쨌든 류한길씨도 언급했듯이 우리가 홍대에서 하지 못해서 강남의, 그것도 찾아가기 힘든 논현동 주변에서 행사를 진행한 것은 아니다. 홍대 중심의 언더그라운드 문화 신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런 문제 때문에 홍대 문화 신을 적대해서 다른 곳을 육성해야 한다느니, 문화적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느니 하는 관점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우린 지금의 홍대 문화의 다양성을 확장하자는 의미가 마치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확장과 헷갈리고, 새로운 시도가 홍대 내부에서만 생산 소비되는 현실을 고민했었다. 우리는 단순히 지역적 헤게모니를 해체하자는 이야기를 하는건 아니다. 예를 들어 저번 토크에서 최소한 미디어버스는 어떤 정체성(페미니즘 진, 펑크 진)에 기반을 둔 진의 발간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정연씨 미안~) 보통 100부나 많아도 150부에 한정되는 이런 소규모 출판 사업에서 독자의 충성도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진은 다양한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생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난 이러한 정체성 안에서 단순하게 반복 재생 생산되는 논의들을 미디어버스 라이브러리 안에 포함시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정말 이런 것에는 관심없다. 앞에서 이야기된 맥락과 연관해서 지금의 홍대 신이라는 지역적 정체성 역시 철저하게 홍대 안에서만 반복 재생 생산된다. 홍대는 말 그대로 카페화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정체성이나 태도, 취향 아래에서 세밀하게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 맞다.
물론 미디어버스는 보편적인 지평을, 주체를 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나의 생각 안에서 무언가를 구획화시키는 행위는 그것이 가질 수 있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최소한의 지평은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현실 안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것 같다.

뭐 나에게 홍대가 가지는 의미는 그랬다. 그렇다고 다른 장소, 이를테면 청담동이나 안국역이나 종로나 충무로를 육성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적 흐름이 파급력을 가지고 제대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군집화되는 것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게 지금 상황에서는 하나의 딜레마인데 저번 토크에서 재희씨가 지적했던 부분은 적절한 대안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아주 중성적인 공간 이를테면 광화문 교보문고 같은 공간에 무심하게 놓이는 것. 난 '소비자' 주체들이 지배하는 공간 내부에서 그냥 무심하게 놓여있는 스몰 파켓 vol.2을 상상해봤다.

또한 페어의 형식 및 이 안에 포섭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이번 전시는 총 한달간 진행되었고 4번의 이벤트가 있었다. 이벤트의 목적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었고. 이 4번의 이벤트는 2번의 공연과 진 제작 워크샵 그리고 전시에 대한 가벼운 토크였다. 공연의 경우에는 매뉴얼의 정체성과 연관된 부분이기 때문에 사실 나는 별로 할말이 없다. 사실 진 제작 워크샵과 토크 진행을 미디어버스에서 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진 제작 워크샵은 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기본적인 속성과 잘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진행한 행사이다. 진이라는 것이 우연적이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매체이기에 짧은 시간의 고민 안에서 하나의 생산물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 행사의 참여자 대부분이 미술 관련 종사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럴듯한 생산물이 나오긴 했다. 난 이 결과물 자체의 퀄리티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대신 이 행사를 진행하면서 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일종의 오해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축소시킨 부분이 있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 같은 것이 들었다.
이것은 진이라는 매체의 대중성과 연관된다. 진은 분명히 '대중적'인 매체이다. 이것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대중성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법과는 좀 다르다. 우리는 흔히 대중성을 다수를 만족시키는 무엇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수를 만족시킬지 몰라도(정말 그러한가?) 전부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특히 나같은 놈은 더 힘들다)
무언가를 기획할때 자기 스스로를 대중적으로 위치지우려는 시도가 빠지는 함정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문화 기획은 필요없다. 가장 대중적인 문화 기획은 경영학에 의해 이뤄지고 있고 실제로 가장 대중적인 극장은 CGV이고 가장 대중적인 카페는 스타벅스이다. 가장 대중적인 소설은 폴 오스터나 하루키에 의해 쓰여지고 있으니 당신이 굳이 새로 쓸 필요가 없다. 종이를 낭비하면서까지 말이다. 굳이 새로운 것을 보탤 필요는 없다. 그걸 다양성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문화 공해 아닌가? 새로운 것을 제시할 능력도 없으면서 국민의 세금이나 축내는 쓰레기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 같은 공간들. 대중적인 것에 대한 이미지가 CGV나 스타벅스, 영화로 치면 <디 워> 같은 것에 한정된다면 이 세상은 참 뭐 같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의 대중성은 다수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과 연관된 것이었다. 그것의 시작은 개인이고. 우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진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은 대중성의 이미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진 메이킹 워크샵은 나쁜 의미에서의 대중적인 것을 지향했으며 뭔가 어정쩡하게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그 결과물과 과정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즐거운 시간이었고, 앞으로 고민을 많이 해서 행사의 밀도를 높이고자 한다.
진 토크는 외관상 널널한 것이었지만 뭐 그냥 만족했다. 많은 것을 준비해서 스티브 잡스처럼 유려하게 진행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개선의 여지를 넓혀나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정말 긴 전시였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vol.2를 기대해주시길.. 커밍 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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